최근 우리나라 교육 현장에도 AI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앞으로 AI가 필수적인 기술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아이들에게도 일찍부터 AI를 가르쳐야 한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나 역시 챗GPT 유료버전을 구독하며, AI를 매일 1시간 이상 사용하고 구독하고 있다.
그리고 틈틈히 AI 사용법을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 AI를 다루는 능력이 중요해질 거라는 데는 크게 이견이 없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아이들에게 AI를 빨리 가르치는 게 무조건 좋은 걸까?
사회심리학자이자 『불안 세대』의 저자인 조너선 하이트는 한국의 AI 교육 도입에 대해 상당히 우려한다.
그는 아이들의 발달 과정에서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가 미친 영향을 이야기하며,
AI 역시 너무 어린 시기부터 무분별하게 사용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AI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분명 필요한 기술일 것이다.
하지만 필요한 기술이라고 해서 반드시 어릴 때부터 사용해야 하는 걸까?
AI의 장점만 바라보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인간의 성장은 기기로 대신할 수 없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데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경험이 필요하다.
친구와 직접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고, 놀고, 싸우기도 하고, 화해도 해보면서 인간관계를 배운다.
불편한 상황을 견디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그런데 2010년대 초반 이후 태어난 이른바 '알파세대'는 어린 시절부터
스마트폰과 태블릿 같은 디지털 기기가 매우 익숙한 환경에서 자랐다.
스마트폰과 SNS가 아이들의 일상 깊숙이 들어오면서
대면 활동이나 야외 활동이 줄어들었다는 우려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조너선 하이트 역시 『불안 세대』에서 스마트폰 중심의 아동기가
아이들의 정신 건강과 사회적 발달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그런 상황에서 AI까지 아이들의 일상에 빠르게 들어오고 있다. 스마트폰 다음은 AI다.
더 큰게 오고 있다.
과연 우리는 준비가 되어 있을까? 아니 미리 나가서 맞이하는게 맞는가?
소셜미디어가 남긴 교훈
소셜미디어가 처음 등장했을 때를 생각해보자.
전 세계 사람들을 연결하고 누구나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멋진 기술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많은 장점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가 처음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들도 하나둘 나타났다.
과도한 사용, 비교와 중독, 사이버 괴롭힘, 가짜뉴스 같은 문제들이다.
특히 청소년의 정신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두고 지금까지도 많은 연구와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AI도 비슷하지 않을까?
지금은 AI가 가져올 엄청난 가능성에 모두가 주목하고 있다.
나 역시 AI를 사용하면서 놀랄 때가 정말 많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을 때 좋은 점만 먼저 보이고 부작용은 한참 뒤에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아이들에게 적용할 때만큼은 조금 더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디지털 네이티브라고 기술을 잘 쓰는 것은 아니다
요즘 아이들을 흔히 '디지털 네이티브'라고 부른다.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사용했으니 당연히 디지털 기술도 잘 다룰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기기를 많이 사용하는 것과 기술을 제대로 활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사용한다고 컴퓨터를 잘 아는 것은 아니다.
유튜브와 SNS를 능숙하게 사용한다고 디지털 정보를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도 아니다.
AI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ChatGPT에 질문을 잘 입력하고 답을 빠르게 받아내는 것이 곧 AI를 잘 활용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
최근 MIT 연구진의 실험에서도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ChatGPT를 이용해 글쓰기 과제를 수행한 참가자들은 편리하게 과제를 수행할 수 있었지만,
연구진은 AI 사용 과정에서 인지적 참여가 줄어드는 모습도 관찰했다고 보고했다.
물론 하나의 실험만으로 AI가 학습 능력을 떨어뜨린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 질문은 남는다.
생각하기 전에 AI부터 찾는 습관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
모르는 것이 생겼을 때 고민하고, 찾아보고, 틀려보고, 다시 생각하는 과정.
어쩌면 진짜 공부는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춘기에는 더욱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특히 사춘기는 신체뿐 아니라 뇌와 사회성도 계속 발달하는 시기다.
친구와 관계를 맺고, 갈등을 경험하고,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면서 조금씩 어른이 되어간다.
그런데 이런 시기에 사람보다 AI와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진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아직 우리는 정확히 모른다.
바로 그 점이 오히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AI가 아이들의 성장과 학습에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충분한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역시 처음 등장했을 때 지금처럼 청소년 사용 문제를 심각하게 걱정하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여러 문제를 발견하고 사용 시간을 제한하거나 학교에서 스마트폰을 어떻게 관리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AI에서도 똑같은 과정을 반복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AI 교육은 조금 천천히 가도 되지 않을까?
한국은 교육열이 높은 나라다.
새로운 교육법이나 기술이 등장하면 남들보다 늦어지는 것을 불안해하는 분위기도 있다.
AI도 비슷하다.
'앞으로 AI 시대니까 빨리 가르쳐야 한다.'
처음에는 당연한 말처럼 들린다.
그런데 꼭 빠른 것이 좋은 것일까?
AI 사용법은 조금 늦게 배워도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지 모른다.
반면 어린 시절에 사람들과 부딪치며 관계를 맺고, 책을 읽고, 뛰어놀고,
스스로 생각해보는 시간은 나중에 다시 만들기 어렵다.
그래서 아이들의 AI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시작하느냐'보다 '언제, 어떻게 사용하게 하느냐'가 아닐까?
AI 시대에 오히려 필요한 교육
AI를 막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앞으로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서 AI는 피하기 어려운 기술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단순히 ChatGPT 사용법이나 프롬프트 작성법을 빨리 가르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지 않을까?
- AI가 내놓은 답을 그대로 믿지 않는 능력.
- 틀린 정보를 찾아내는 능력.
- 자신의 생각을 먼저 만들어보는 능력.
- 다른 사람과 대화하고 공감하고 협력하는 능력.
- 그리고 필요할 때 AI를 '도구'로 사용할 줄 아는 능력.
오히려 이런 것들이 AI 시대에 더 중요한 교육이 될 수도 있다.
AI는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다.
지금보다 훨씬 똑똑해질 것이고 우리가 직접 해야 하는 일도 계속 줄어들 것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아이들에게는 AI가 대신해줄 수 없는 경험이 더 중요해질지도 모른다.
사람을 만나고, 뛰어놀고, 실패하고, 고민하고, 스스로 답을 찾아보는 경험 말이다.
AI를 얼마나 빨리 배우느냐보다 AI 없이도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먼저 길러주는 것.
나는 그게 AI 시대의 아이들에게 더 필요한 교육이 아닐까 생각한다.